설교 말씀 노트

요한복음 :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 예수님의 표적 7(주일)

페이지정보

본문

07. 02. 2019
요한복음 11장 17 - 44절
김한수 목사님

  드디어 요한복음에 있는 마지막 표지판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바라본 7가지 표적의 목적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하고 증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현상만 바라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도구로만 생각했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오늘 본문의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매우 사랑하고 따랐던 3남매이다. 이들이 거주햤던 곳은 '베다니'인데, 위치적으로는 예루살렘으로부터 3km정도 떨어져있었고, 죄인이나 유출병 환자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본문에서 나사로가 죽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아직 나사로가 아플 때 예수님께 가서 말씀을 드렸는데, 예수님은 바로 오지 않으시고 지체를 하시며 나사로가 죽은지 4일이 지나서야 나사로의 집으로 오신다.
  죽지 않고, 더 나아가서 아프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예수님은 이 표적을 통해 우리에게 귀한 것을 보여주시기 원하셨다.

 1.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다.
  신앙 생활도 열심히하고, 헌금 생활도 잘하고 성실에게 진실한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도 큰 사고를 당할 수 있고,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이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 때 사람들은 질문할 수 있다. '열심히 잘 믿고 있는데 왜 이런 고난이 제게 있는거죠?'라고.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야'라고. 믿음에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떠마가는 사람, 다른 부류는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을 믿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오는 고난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믿음을 더 크게 하시기 위함이다.
  근심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자들이 너무 많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우리의 믿음을 키우시기 위함이다. 욥도 부할 때는 몰랐으나 고난이 다가왔을 때, 자신의 아내가 떠나갔다. 그러나 후에 다시 그 이상의 복을 주셨다.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도 풀무불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던 그 친구들을 하나님은 구해주셨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바치라는 고난이 있었지만 그것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더 크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2. 예수님이 부활이고 생명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사람이 죽는 것만 봤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 당시 마르다와 마리아도 불평이 가득하였고, 온전한 믿음이 없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실 수는 있는 분이심을 믿지만 죽은 사람은 어찌하실수 없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의 생각으로 제한했던 것이다. 우리도 이 신앙에 머무르면 안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머물러 있는 신앙에게 기적을 보여주신다. 나사로를 죽음에서 해방시키신 것이다. 또한 기적을 체험했다면 거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마 이 기적을 보고 잘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것을 대항하는 자들도 있다. 그 유대인들 중에서도 예수님뿐만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는 자들이 있었다.

 3. 아는 신앙을 넘어서 믿는 신앙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죽은 자를 살리심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원하신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아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만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마르다 마리아와 같은 믿음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내 생각으로 절대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해서는 아니된다.
  예수님은 우리를 계속해서 아는 신앙에서 믿는 신앙으로 끄집어 내신다. 우리도 이미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알기만하고 행하지 아니하고, 헌신하지 아니하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식적으로는 귀신도 안다.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잘 안다. 그러나 그 귀신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 헌신하지 않는다. 섬기지 않는다. 우리가 만약 알기만 한다면 귀신가 다를바가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같이 행동하는 자가 되자.